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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문제지(ReCM)
은혜나누기
 
 
 

작성자
 
장정완
작성일
 
2013/04/16 16:39:03
 
조회수
2171
글제목
 
Never give up!!
링크
 


 Never give up!!
 
 말씀 : 왕하 13:14-19
 요절 : 왕하 13:19 “하나님의 사람이 노하여 이르되 왕이 대 여섯 번을 칠 것이니이다 그 리하였더면 왕이 아람을 진멸하기까지 쳤으리이다”
 
  오늘 말씀은 엘리사 선지자가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에게 주는 마지막 유언의 말씀이요, 장차 그의 대적인 아람을 칠 수 있도록 돕는 믿음의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들 각자에게 눈앞에 닫친 문제를 직시하고, 포기하진 않는 믿음을 배울 수 있길 기도합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엘리사가 죽을병이 들매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가 그에게 내려와 자기의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요” 엘리사가 죽을병이 들었습니다. 엘리사가 누구입니까? 이스라엘의 선지자 엘리야를 이어받은 하나님의 선지자였습니다. 오늘 본문 열왕기서는 이스라엘의 왕들의 역사를 기록한 책입니다. 그런데 열왕기하를 보면 2장부터 9장 전반부까지 왕들의 기록보다는 엘리사의 역사가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이를 볼 때, 하나님의 역사가 왕들의 역사가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람을 통한 역사인 것을 알 수 있으며, 또한 엘리사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약 60년 동안 엘리사는 이스라엘의 정신적인 지주요, 영적인 아버지였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아람이라는 나라와 전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요하스 왕이 엘리사를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라고 부른 것을 보면 전쟁에서 엘리사는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엘리사가 죽게 되었습니다.
 
  요아스 왕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는 그 소식을 듣고 직접 엘리사의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그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울었습니다.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엘리사 한 사람은 그 자체가 이스라엘 군대의 전차와 같고 용사와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기대하고 의지했던 엘리사가 죽게 되었으니 이제 왕에게는 의지의 대상, 보호의 대상이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아버지를 잃은 고아 같은 신세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요아스 왕은 슬퍼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슬픔의 이면에는 앞으로 어떻게 나라를 다스려 가야 할지 막막함과 두려움이 앞섰을 것입니다. 요아스 왕은 걱정과 염려 그리고 슬픔이 몰려왔습니다.
 
  사람에게 의지의 대상이 사라진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특별히 13학번 신입생들을 보니 이런 마음이 더 듭니다. 지난 20년 동안을 부모님의 도움으로, 학교가면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원하던 대학에 들어왔습니다. 지금까지는 부모님이 선생님들이 많이 챙겨주시고 도와주셨습니다. 그런데, 대학에 오니 이런 것들이 줄어들었습니다. 부모님도 더 이상 전공과 학교생활에 관여하지 않으십니다. 몰라서 안하기도 하시고 성인이 된 우리를 인정해 주시기도 합니다. 그래서 잠시나마 성인이 된 자유를 만끽하며 3월을 보냅니다. 그런데 막상 시험기간이 되어 공부를 하려하니 교수님이 나를 도와 줄 것 같은데, 실제로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기본적인 것들은 이미 다 배우고 오셨죠?”하며 넘어가버리기가 일수입니다. 과 선배님들은 어떻습니까? 3월에는 2학년 선배들이 많은 관심과 사랑으로 밥을 사주고 함께 해 주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정작 4월이 나의 공부와 시험에 관심을 기울여주는 선배는 만나기가 힘이 듭니다. 이제는 나에게 의지의 대상도, 보호자도 없어 보입니다. 나 혼자 스스로 해야 만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어려운 과목들을 대할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합니다. 분량이 많고 내용도 어렵습니다. 거기다가 매주 쏟아지는 퀴즈와 리포트들로 날을 새며 해보지만 어렵게만 느껴집니다. 그래서 시험공부를 할 마음을 놓아버리게 됩니다. 처음으로 보는 시험, 앞으로 남은 4년을 어떻게 보낼까 막막함이 생깁니다.
 
  그런데 엘리사 선지자는 두려움과 염려 속에 갇힌 요아스 왕을 어떻게 도왔습니까?
 
  15절을 보십시오. “엘리사가 그에게 이르되 활과 화살들을 가져오소서 하는 지라 활과 화살들을 그에게 가져오매” 엘리사는 슬픔과 비통함에 사로잡혀 있던 요아스 왕에게 활과 화살을 가져오도록 했습니다. 왕은 눈물을 흘리며 넋을 놓고 있다가 갑작스러운 엘리사의 말에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대로 순종하기 시작했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왕이 손으로 활을 잡으소서 하매 그가 손으로 잡으니 엘리사가 자기 손을 왕의 손에 얹고” 이번에는 왕의 손으로 활을 잡게 했습니다. 엘리사는 자신이 병으로 죽어가는 마지막 순간에 왕에게 이런 특별한 퍼포먼스를 하게 했을까요? 지금 시점에서 이런 것보다 아람의 약점을 미리 일러주거나, 아니면 앞으로 어떤 사람을 중요요직에 올려야 한다는 이런 말이 더 필요하지 않았을까요?
 
  활과 화살은 전쟁의 도구입니다. 저희 고향에 가면 국궁장이 있습니다. 제가 그 곳에서 활과 화살을 잡아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활을 잡고 시위를 당겨보면 그 팽팽한 시위줄을 통해 온 몸에 전율이 좌악 흐릅니다. 뭔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자신감이 생기고, 비장함이 생깁니다. 활을 집은 손에 힘이 탁 들어가면서 어깨가 쫙 펴집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 활에 화살을 걸어 한 번 쏘아보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자신의 보호자 이스라엘의 영적인 아버지를 잃어버릴 이 절망스러운 요아스 왕에게 맨 먼저 도운 것은 활을 다시 잡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통해 그 안에 있는 마음의 두려움을 몰아내게 해주었습니다. 활과 화살을 통해 다시 싸울 준비를 시킨 것입니다. 전의가 상실된 군인은 사기가 꺾이게 되어 있습니다. 전쟁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기입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기가 죽고 사기가 꺾이면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전쟁에서 이기기가 힘이 듭니다. 기가 죽고 사기가 꺾이면 마음에 두려움이 생깁니다. 마음에 두려움이 생기면 마음이 어두워지고, 마음이 어두워지면 손발이 오그라듭니다. 두려운 마음은 모든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 부정적이고 어두운 쪽으로 몰아갑니다. 그래서 결국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지 못하게 합니다. 엘리사는 요아스 왕에게 가장 먼저 이런 두려운 마음, 걱정스러운 모든 마음들을 몰아내기 위해 다시 활을 잡게 한 것입니다.
 
  왕이 활을 잡은 다음 어떻게 했습니까? 17절 “동쪽 창을 여소서 하여 열매 엘리사가 이르되 쏘소서 하는지라 곧 쏘매 엘리사가 이르되 이는 여호와를 위한 구원의 화살 곧 아람에 대한 구원의 화살이니 왕이 아람사람을 멸절하도록 아벡에서 치리이다” 엘리사는 왕이 활을 잡자 이번에는 동쪽의 창문을 열게 했습니다. 많은 문들이 있을 텐데 왜 동쪽 창문을 열게 했을까요? 동쪽 창문 방향에는 아람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아람은 이스라엘의 동쪽과 북쪽을 둘러싼 나라였습니다. 동쪽은 요아스 왕의 두려움의 대상, 아람적군들이 있는 곳입니다. 쳐다보기도 싫은 곳, 생각하기도 싫은 곳입니다. 감추어두고 싶고 피하고 싶은 곳입니다. 그런데 그 문을 열라고 합니다. 두려움의 대상이 있는 곳, 두려워서 마음이 막혀 있는 그 창문을 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창문을 향하여, 그 창문 너머의 아람을 향하여 화살을 쏘라고 합니다. 이 화살은 여호와를 위한 구원의 화살이었습니다. 아람 가운데 친히 싸우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화살이었습니다. 엘리사 선지자는 요아스 왕에게 이 화살을 쏘게 하면서 반드시 아람으로부터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의 화살을 쏘게한 것 입니다.
 
  화살을 쏘기 위해서는 과녁이 필요합니다. 목표물이 필요합니다. 그 목표를 향하여 시위를 힘껏 당겨 화살을 쏘라는 것입니다. 양궁 국가대표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70미터 전방에 있는 과녁의 동그라미는 거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과녁의 정 중앙을 뚫어져라 바라보면 마음에 과녁의 중앙에 크게 보일 때가 있다고 합니다. 바로 그때, 활의 시위를 당겨 화살을 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내 앞에 놓인 문제들, 어려움들, 중간고사를 제대로 준비하고 치를 수 있습니까? 어려워서 미루고 싶고, 포기하고 싶고, 피하고 싶은 이런 실제적인 문제를 피하지 말고 직시해야 합니다. 직시하지 않으면 집중하지 못하고, 집중하지 못하면 화살을 명중시킬 수가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지금 나를 괴롭히는 문제들을 피하지 않고 직시하는 믿음을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자,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왕의 손으로 활을 잡으소서 하매 그가 손으로 잡으니 엘리사가 자기 손을 왕의 손위에 얹고” 왕이 활을 잡았는데, 엘리사가 자기 손을 왕의 손 위에 올려놓은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활을 쏠 때, 자기 손으로 잡고 집중을 해야 하는데, 다른 사람이 손으로 잡아 주면 집중력이 더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엘리사는 자기 손을 활을 잡은 왕의 손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이 화살은 왕이 혼자 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가진 이사야 선지자의 권능의 손이 함께 화살을 쏘는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활은 엘리사에게 권능을 주신 하나님의 손이 직접 왕의 손과 함께 해 주신다는 약속 이었습니다. 이렇게 될 때, 그 화살은 여호와를 위한 구원의 화살이요, 아람에 대한 구원의 화살이 됩니다. 왕이 아람 사람, 그 무서움의 대상을 멸절하기까지 칠 수 있는 권능의 화살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 말씀에서 현실의 문제를 직시하는 두 번째 눈을 발견했습니다. 지금 내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영적인 눈으로 다시 바라보는 눈입니다. 지금 나의 상황이 어렵고 힘들어 포기하고 싶고, 주저앉고 싶고, 이런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고 느끼는 바로 그때, 하나님의 손, 구원의 손, 크고 전능하신 그 손이 나의 활, 나 자신을 붙잡고 있다고 바라보는 눈입니다. 요아스 왕의 활을 붙잡고 계시는 그 하나님의 손이, 지금 이 시간 나의 활, 나 자신을 붙잡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응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두려움의 창문, 걱정과 염려의 창문, 귀찮니즘의 창문, 해도 안 된다는 부정적인 창문을 열어제치고, 그 너머에 있는 문제를 직시해서 바라봅시다. 그리고 내게 주어진 활을 붙잡고 그 문제의 과녁을 바라보며 화살을 쏠 때, 하나님의 구원의 손이 지금 나와 함께하며 응원하고 계시는 그 음성을 들읍시다. 그렇게 할 때, 내가 어려우면, 다른 사람도 어렵다. 이것은 나의 선택이다. 어차피 뛰어 넘어야 할 대상이다. 피할 수 없는 한 판이다. 두 눈을 부릅뜨고, 그 속에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하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엘리사는 이처럼 현실을 직시하고, 방향을 잡게 한 다음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요아스 왕에게 또 하나의 퍼포먼스를 하게 했습니다.
 
  18절을 보십시오. “또 이르되 화살들을 집으소서 곧 집으매 엘리사가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땅을 치소서 하는지라 이에 세 번 치고 그친지라” 엘리사는 화살로 땅을 치라고 했습니다. 왕은 화살로 땅을 세 번 쳤습니다. 그러자 엘리사의 반응이 어떻습니까? 19절 “하나님의 사람이 노하여 이르되 왕이 대 여섯 번을 칠 것이니이다 그리하였더면 왕이 아람을 진멸하기까지 쳤으리이다” 엘리사는 의외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병이 들어 죽어가는 그가 화를 발하며 말했습니다. “왕이 오 육 번을 칠것이니이다 그리하였더면 왕이 아람을 진멸하기까지 쳤으리이다” 화살은 땅을 치는 도구가 아닙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이 화살로 땅을 치라고 해 놓고서 세 번만 쳤다고 진노하며 화를 냈습니다. 이런 행동을 통해서 엘리사가 왕에게 주고자 했던 것은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이 화살은 하나님의 구원의 화살입니다. 이 구원의 화살로 아람을 진멸하기까지 치라는 의지의 표현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엘리사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는데 어떤 믿음의 자세가 필요한지를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믿음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18절에 보니 왕은 세 번만 치고 그쳤다고 했습니다. 요아스 왕의 자세가 이정도면 되겠지 하는 자기중심적인 사고의 결과였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적당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믿음은 이정도면 되겠지 하는 적당주의를 몰아내게 합니다. 우리의 공부의 자세도 이러해야 할 줄 믿습니다. “왕이 오 육 번을 칠 것이니이다” 이스라엘의 왕으로 지도자로 서야 할 이 사람이 가져야 할 믿음의 자세는 이정도면 되겠지 하는 적당주의와 싸우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서울대인입니다. 장차 우리나라와 동북아 시대를 책임질 지도자 들입니다. 지난 주 예레미야 애가를 읽으며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어떤지를 느꼈습니다. 지도자에게 주어지는 자세는 더 엄격한 것입니다. 거기다가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왕 같은 제사장들로 불렀습니다.
 
 에베레스트 산 등정을 할 때, 어떻게 해야 올라갈 수 있는가?
 헬기를 타고 중간쯤에 도착해서 거기서부터 올라가면 쉽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는 올라 갈 수가 없다고 합니다. 우리 몸이 높은 산의 산소의 양에 따른 호흡에 적응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되지 않으면 고산병 증상을 보이면서 호흡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등산을 포기해야 한다고 합니다. 방법은 한 가지, 아래에서부터, 밑에서부터, 한 걸음씩 올라가야 한다. 그때 넘어야 할 고비가 바로 결코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Never give up”
 
 하나님의 구원의 손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 힘을 덧입고 나아갈 때 우리는 결코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 감당할 힘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지금 나의 눈앞에 놓여있는 시험과, 진로와 군 입대의 어려움들을 극복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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