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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문제지(ReCM)
은혜나누기
 
 
 

작성자
 
장정완
작성일
 
2013/03/27 09:12:07
 
조회수
7992
글제목
 
네 이름이 무엇이냐?
링크
 


  네 이름이 무엇이냐?
 
 
 말씀 : 막 5:1-9
 요절 : 막 5:9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르되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우리는 2주전 목사님을 통해서 Who am I?에 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가장 먼저 힘써야 할 것이 할 것이 ‘내가 누구인가?’하는 자기 정체성을 바로 아는 것임을 배웠습니다. 저도 그 말씀을 새롭게 영접하고 2주 전 한 13학번 여학생을 만나 시간 관리 일대일을 하면서 ‘내가 누구인가?’를 아는 것에 대한 중요성에 대해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새내기는 그 질문을 계속 말하면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깊이 생각해 보고 싶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라포 일대일이 계속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이를 볼 때, 이 질문은 모든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질문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거라사 지방에서 만난 귀신 들린 한 사람의 정체성을 찾아주시는 예수님이 나옵니다. 말씀을 통해서 우리 인생에서 진정한 나의 정체성을 찾아 주시는 예수님을 만나고, 살아있는 한 마디 말씀을 통해서 나의 정체성을 바로 세워가는 시간이 되길 기도합니다.
 
 
 1. 끌려 다니는 인생(1-6)
  1절을 보면 예수님은 갈릴리 바다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방으로 가셨습니다. 거라사는 갈릴리 바다 동남쪽에 위치한 데가볼리의 한 도시입니다. 데가볼리(Deca-Polis)란 10개 도시란 뜻이죠. 이곳은 본래는 유대 지방이었으나 알렉산더 대왕이 이곳을 점령한 후 그리스식 도시로 건설하였습니다. 지금의 명칭은 제라시입니다. 이곳은 원형극장, 제우스와 아데미 신전, 1000평이 넘는 대규모 목욕탕 등 작은 로마와 같이 번성한 도시입니다. 당시에는 로마 군대인 14군단이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가기를 꺼려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지금 이 거라사 지방으로 오셨습니다. 제자들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설레임과 기대감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항상 바다를 건너기만 하면 무리들이 손을 들고 맞이하듯이 이곳에서도 수많은 인파들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고, 예수님 소문이 퍼져서 고위관직 자들이 맞이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2절을 보십시오.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라” 예수님을 맞이한 사람은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었습니다. 참 난감한 상황이었습니다. 저자 마가는 이 사람에 대해 부연설명을 붙였습니다. 3-5절에 보면 이 사람은 무덤 사이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밤이고 낮이고 무덤 사이에서 늘 소리를 지르며 돌로 자기 몸을 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 모습이 어떠했겠습니까? 주변의 사람들이 그를 돕는다고 쇠고랑과 쇠사슬로 매였어도 그가 얼마나 힘이 센지 쇠사슬을 끊고, 쇠고랑을 깨뜨렸습니다. 아무도 이 사람을 제어할 길이 없었습니다. 이 사람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우리가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은 거라사 지방의 분위기를 통해서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그곳은 군인들이 거주하는 도시였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군대 문화가 자리 잡혔습니다. 군대 문화는 거칠고, 부수고, 죽이는 파괴적입니다. 거기다가 오늘 본문 뒷부분에 보면 그곳 사람들은 유대인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수의 돼지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도시의 이방인들과 군대에 납품할 돼지를 키우며 생계를 이어가야 했던 것입니다. 어쩌면 먹고 살기 위해 자기들이 유대인이라는 정체성도 잊어버리고 율법을 따를 만한 힘조차 없었는지 모릅니다. 먹고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닌가하는 상황논리에 빠져들어갔을 것입니다.
 
  어쩌면 오늘 예수님 앞에 나타난 이 사람은 이런 거라사 지방의 현재의 모습, 영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이 사람도 꿈이 있었고, 소망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변의 군대 문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 영적으로 자기를 도울 수 없는 환경들 속에 파묻혀 그것들이 자기를 끌고 다니는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한 마디로 지금 이 사람의 모습은 끌려다니는 인생이었습니다. 자기도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하고, 주변에서도 도와줄 수 없는 끌려 다니는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끌려 다니는 인생은 한 마디로 비참한 인생입니다.
 
  끌려 다니는 인생을 생각해 볼 때,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독특한 캐릭터가 생각납니다. 골륨입니다. 영화 속에서 그는 본래 호빗족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반지를 통해서 얻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제어하지 못해 결국 자기 안에 두 얼굴을 가진 채, 어둠 속에서 그 욕망에 끌려다니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시대를 볼 때도,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들, 세력들에 의해 이 시대의 빛과 같은 대학 청년들을 끌고 다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제 수도권 캠퍼스에서 사역하는 학원복음화협의회단체에 소속된 약 180여명의 간사님들이 모여서 연합 기도회를 가졌습니다. 모두 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이 시대가 대학 청년들을 거대한 힘으로 끌고 가고 있다고. 그래서 너무 바쁘고 힘들게 해서 혼을 쏙 빼놓고 있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정말 우리의 고민이자 기도 제목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기도 제어할 힘이 없이 끌려 다니는 이 사람을 어떻게 도와가십니까?
 
 2. 네 이름이 무엇이냐?(7-9)
  예수님은 이 사람을 어떻게 도우셨습니까? 8절을 보십시오.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예수님은 귀신들린 사람을 만나자 그를 사로잡고 있는 더러운 귀신의 정체를 아시고 그 사람에서 나오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귀신 들린 자를 볼 때, 그 사람 자체가 못쓰게 된 것으로 생각하고 미친 사람 취급을 합니다. 그리고 쇠사슬과 고랑으로 묶어 두고 식물인간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귀신과, 귀신들린 자를 분리하여 보셨습니다. 그의 겉모습만을 보면 그 사람이 귀신들린 자와 같습니다. 그가 곧 귀신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속모습인 하나님의 거룩한 형상을 보셨습니다. 귀신만 나가면 그가 온전해 져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될 것을 보셨습니다. 성경은 그 사람 자체가 못쓰게 된 것이 아니라 귀신이 그 영혼을 사로잡아 파멸시키고 있는 것으로 봅니다. 마치 의사가 병든 자를 볼 때 병이 그 사람을 괴롭히고 있으므로 병만 고쳐 주면 그 사람은 건강하게 될 수 있다고 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귀신은 그에게서 나오지 않고자 반항을 합니다. 7절. 예수님께 큰 절을 하더니만 큰소리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간청했습니다. 귀신들은 귀신같이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우리가 악한 영들을 어떻게 분별할 수 있습니까? 악한 영들은 예수님과 관계 맺기를 죽기보다 더 싫어합니다. 우리가 나 스스로를 볼 때나 혹 다른 사람을 볼 때, 동일하게 이런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나 스스로나 주변의 누군가를 볼 때, 지금 예수님과 관계 맺는 것이 잘 되는지? 걸리는 것은 없는지? 혹 거부하는 마음은 없는지? 만약 그렇다면 그 원인을 찾아내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 원인을 어떻게 찾아내셨습니까?
 
  예수님은 그의 간청에 물러나지 않으시고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도전하셨습니다. 9절.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예수님은 그의 이름을 물으셨습니다. 이는 귀신의 정체를 드러내고자 함입니다. 그러자 그는 말씀의 권능 앞에 맞서지 못하고 정체를 밝혔습니다.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자연계도 다스리는 권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영적인 세계도 다스리시는 권능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앞에 사단이 벌벌 기고 있습니다. 군대란 ‘레기온’ 즉, 로마 군인 6,000 명으로 구성된 ‘군단’을 말합니다. 이를 볼 때 그에게는 6,000 마리의 떼 귀신이 역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 군단의 힘으로 그를 끌고 다니니 그 사람은 그 거부할 수 없는 힘에, 강력한 힘에 끌려다니는 인생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귀신의 정체를 폭로시켜 그 사람을 살리고자 하셨습니다. 그 영혼을 인격적으로 대하시면서 귀신을 향하여는 나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속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도록 도우셨습니다. 그는 귀신이 들려 지금까지 자신의 존재 의미를 잃어버렸습니다. 귀신에게 사로잡혀 참된 자아를 상실하고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배반한 결과 중 가장 비참한 것은 존재 의미를 잃고 자아를 상실하게 된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은 범죄 한 아담에게 찾아 오셔서 가장 먼저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고 질문하셨습니다(창3:9). 이는 네 존재가 무엇이냐 하는 질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얍복강에서 형에 대한 불안과 초조, 세상의 물질을 추구하다가 한계 상항에 부딪힌 야곱에게 동일한 질문을 하셨습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창32:27)”
 
  강력한 군대 귀신이 들린 사람을 고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을 만나는 길 밖에 없습니다. 부인 할 수 없는 힘에 끌려 다니는 사람이 자기 본래의 모습을 회복되기 위해서는 인생의 길이 되시는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15절에 보면 귀신 들린 자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 “옷을 입보 정신이 온전하여 앉아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드디어 그의 본래 모습을 찾은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예수님을 어떻게 만날 수 있겠습니까? 영으로 계신 예수님을 만나는 데는 다양한 방법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니 거라사의 광인은 어떻게 예수님을 만났습니까? “네 이름이 무엇이냐?”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만났습니다.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은 말씀을 실존적으로 듣고 영접하는 것을 말합니다. 실존적인 말씀이란 예수님의 말씀을 지금! 이곳에서! 내 눈 앞에 놓여 있는 이런 상황 가운데! 그리고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듣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셔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가 그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구체적으로 만날 수가 있습니다.
 
  참회록의 저자 성 어거스틴도 끌려다니는 인생에서 성경의 기록된 한 마디 말씀을 듣고 자기가 누구인가를 깊이 돌아보고 다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젊어서 방탕하고 마니교라는 사이비 종교와 교리에 심취해 있던 그가 롬 13:13,14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어거스틴의 변화는 성경 말씀 속에 흐르는 기독교사의 거대한 사상적인 기초를 놓는 위대한 성인이 되었습니다. 무엇이 끌려다니던 어거스틴의 인생을 세계기독사의 거대한 사상적인 흐름을 놓아가는 성인이 되게 한 것입니까? 그에게 임한 살아있는 한 마디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시간에도 동일하게 저와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물으시는 예수님의 질문은 “네 안에 있는 진짜와 가짜가 무엇이냐?”하고 물으시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가짜에 속고 있었다면 그것을 예수님의 능력으로 몰아내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찾아 주고자 하시는 진짜의 모습, 본래의 내 모습, 내가 누구인가를 찾아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내 안에 있는 거짓 된 이름들, 가짜의 이름들이 있습니까? 혹 나는 그 이름들 때문에, 그것들 때문에 끌려다니고 있지는 않습니까? 능력이라는 이름, 성공이라는 이름, 성취라는 이름, 인정이라는 이름. 그러나 우리는 이제 이런 이름에 속지 맙시다. 오늘, 이 시간, 너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살아있는 음성을 듣습니다. 이 음성을 들을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여해 주신 본질적인 이름, 하나님의 아들이요 딸의 이름으로, 크리스찬의 이름으로, 예수님의 것, 목자의 이름으로 우리를 회복시켜 주실 줄로 믿습니다.
 
  2012년 서울대 재학생 실태조사(대학생활문화원)에 따르면 학생들이 경험하고 있는 영역조사가 있었는데요, 가장 힘들어 하는 영역은 진로문제였습니다. 50.2%였습니다. 2012년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 조사 때는 진로를 위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항목으로 ‘창의력 및 문제 해결 능력’, ‘전공 관련 지식과 안목’, ‘선후배 및 동료와의 인간관계’로 나타났는데요, 막상 공부를 하고 앞으로 감당해야 할 진로문제를 생각하면 상황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생각과 현실이 다르다는 말입니다. 지난 주 토요일에 한 02학번 한 선배의 결혼식에서 05학번 졸업생을 만났습니다. 지금은 대기업 기획부서에 들어가서 일하고 있는데요, 그 선배의 말이 대학 때 자기가 가졌던 생각과 막상 졸업 후의 지금의 자기 모습을 생각하니 혼란스러운 점이 있다는 겁니다.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거죠. 프로젝트 하나를 위해 2개월간 주일도 출근을 하는 바람에 예배도 제대로 드리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월급날이라고 했습니다. 또 그 자리에서 지금 대학원에 다니는 한 선배도 만났습니다. 진로를 생각하면 마찬가지 고민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원하지 않는 방향 쪽으로 끌려다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제가 두 사람에게 질문을 하고 조언을 구했습니다. ‘그러면 대학생활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두 사람 모두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습니다. “간사님! 학생들에게 성경 말씀을 제대로 가르쳐 주십시오. 대학생 때, 성경 말씀을 통해서 자기 정체성을 바르게 놓지 않으면 하나님이 우구신지, 예수님이 누구신지, 또 내가 누구이며 무엇을 해야 할지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합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2011년도 서기연 대표의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간사님 후배들에게 성경 말씀을 가지고 자기를 깊이 돌아보고 자기의 모습을 발견해 기도록 도와주십시오.” 어제 저녁 모임에서 사무엘 목자님의 간증도 생각났습니다. 2학년 때와 지금의 모습이 바뀐 것은 말씀이 나에게 얼마나 즐겁게 다가오는지 모릅니다. 성경을 읽고, 일대일을 하고, 양식말씀으로 QT를 하는 것이 재미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목자로 모습으로 살아지더라는 것입니다. 이 봄 학기 일대일 성경공부와 QT 말씀속에서 영접된 한 마디 살아있는 말씀을 통해서 진정한 내 모습을 말씀 속에서 찾아가기를 기도합니다.
 
  내게 들려주시는 한 마디 살아있는 말씀을 영접하고, 그 말씀 속에서 나의 본질 적인 모습을 찾아갈 때,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시는 주님의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게 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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